냉면을 언제부터 즐겨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 깊게 먹었던 두 번의 기억은 확실히 남아 있다. 워낙 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냉면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듯하다. 어렸을 적 즐겨 먹던 동치미 국수와 비슷한 냉면을 좋아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다만, 그 시점이 애매할 뿐이다. 아마도 매체에서 평양냉면 호불호 이야기가 자주 나오던 때쯤, 남들 따라 대외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냉면에 대한 첫 기억은 겨울로, 친척을 따라 의정부의 한 냉면집을 방문했던 때다. 그때 본 장면 중 하나는 유명한 이북 출신 성악가가 소주를 곁들여 냉면을 먹던 모습이었다. 나중에 기억과 이야기를 짜 맞춰보니, 그곳이 요즘 가장 유명한 평양냉면집 중 하나인 '의정부 평양냉면'이더라. 그때 홀에는 난로가 있었고, 난로 위 주전자에서는 보리차인지 육수인지, 아니면 면수인지 모르겠지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번째 기억 역시 겨울이다. 가족들과 시내 구경을 하다 들른 을지면옥에서 차가운 냉면을 따뜻한 방 안에서 먹었는데, 그때 '냉면은 겨울 음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음식이라는 게 맛도 중요하지만, 함께한 추억이 더해질 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나의 인상적인 냉면 기억은 대부분 '의정부파' 냉면집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의정부파를 좋아하게 됐다. 최근 을지면옥이 이전 개업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조만간 한번 가볼 생각이다.
냉면을 즐겨 먹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나름의 냉면 먹는 철학도 있었다. 냉면은 반드시 무와 함께 먹어야 한다며, "메밀에는 독이 있어서 무로 중화해야 한다"는 말을 떠들던 시절도 있었고, "냉면은 1/3은 그릇에, 1/3은 입에, 나머지 1/3은 목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며 아는 척하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엔 냉면을 멋 부리며 먹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가위로 냉면을 자르다 옆자리 할아버지들에게 혼난 적도 있으니 말이다.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디까지 먹어봤느냐가 중요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의정부파의 의정부 평양냉면, 을지면옥, 필동면옥은 기본이고, 장충동 평양냉면, 우래옥, 을밀대, 남포면옥, 강서면옥 등도 빠질 수 없다. 최근에는 능라도, 정인면옥, 진미평양냉면, 봉피양, 봉밀가, 서관면옥, 서북면옥 같은 집들까지 이야기에 자주 오르내린다. 물론 더 많은 집들이 입소문을 타고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방문했던 곳은 대략 이렇다. 혹시 추천할 만한 맛집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란다.
냉면은 좋은 기억을 남긴 음식이다. 냉면 맛집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자주 다니지 못한다. 권하거나 자랑하기보다는, 조용히 기회가 있을 때 한 그릇씩 즐기고 있다. 냉면에서 더 나아가 메밀면이라는 범위로 확장해 막국수나 모밀까지 포함해서.